용사 쿠로오는 모험을 시작했다. 뿅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걷다가 작은 칼을 휙휙 휘두르며 몬스터와 싸우고 때로는 길가에서 보물상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게임기 전원을 켜는 법도 몰랐던 나는 어느새 게임에 푹 빠져들었다. 내가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내 병실에 온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었다. 거봐 재밌잖아, 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는 동안 게임 진행률은 과거의 내가 진행한 만큼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나는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날 부모님 대신 쿠로오가 왔다. 아침 시간에 딱 맞춰서 찾아온 그는 내게 커다란 꽃다발을 턱 안기곤 웃었다. 퇴원 축하한다고. 사실 그게 축하할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건넨 커다란 꽃다발은 싫지 않았다. 짐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몇날며칠을 병실에서 지내다보니 짐꾸러미가 꽤 커다랬다. 쿠로오는 제 등에 내 짐가방을 짊어졌다.


"연습은요?"

"연습이 문제야? 만날 하는 연습..."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연습에 꽤나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중에 따라 가도 돼요? 연습..."


  나도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이는 건 싫고 배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의 표정이 밝아진 것 하나만으로 꽤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묵묵히 걷던 그가 수다스러워졌다. 다른 애들도 좋아할 거야, 코트에 서 보면 다시 기억이 날지도... 그러다 말이 뚝 끊겼다. 


"꼭 무리해서 기억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기억을 찾도록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았으면서, 여태 기억에 관해선 한마디도 안해놓고선.


"나도 알아, 쿠로."


  그런 그가 안쓰러워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쿠로오의 눈이 커졌다. 긴 잠에서 깨어나 기억을 잃고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는 내게 친근하게 굴었지만 나는 그가 멀게 느껴지기만 했다. 친구라면 테츠로라고 불렀던 걸까. 아니면 쿠로오? 갑작스레 튀어나온 쿠로, 라는 호칭과 편한 말투에 나도 놀라고 말았다. 쿠로오는 그래, 하고 내 어깨를 토닥이기만 했다. 




Posted by 모냐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