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아시는 꼬깃한 쪽지를 손에 꼭 쥐고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쪽지는 상당히 뜬금없었지만 쪽지를 펼쳤을 때 나타난 글씨는 낯익었다. 옥상으로 와. 그렇게만 쓰여있었지만 아카아시는 그것이 보쿠토의 글씨임을 바로 알아봤다. 체육관도 라커룸도 아닌 옥상이라니. 수업이 모두 끝난 뒤라서인지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쿠토 상."


  아카아시의 부름에 보쿠토가 휙하니 돌아보았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지 눈도 제대로 못맞추고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카아시는 성큼성큼 보쿠토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쑥 내밀었다. 손에는 보쿠토가 쓴 쪽지가 쥐어져 있었다.


"놀랐지?"

"놀라긴요. 딱 봐도 보쿠토 상 글씬데."

"그래?"


  역시 이름을 적지 않은 건 일부러 그런 것인지 보쿠토가 멋쩍은 듯 제 뒷머리를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물론 별 소용 없었지만. 무슨 얘기를 하려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보쿠토는 크흠하고 헛기침도 하고 괜히 뭔가 있는 척 먼곳도 한 번 쳐다봤다가 겨우 아카아시와 눈을 맞췄다. 안절부절 못하는 보쿠토를 앞에 두고 있자니 답답하기 보다는 같이 긴장이 되었다. 무슨 중대발표를 하려고?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먼저 말을 꺼낼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한 보쿠토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귀자."


  ...3초 침묵. 


"네?"


  아카아시가 되묻자 보쿠토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또박또박. 사귀자고. 보쿠토가 애초에 이런 장난을 할 사람은 아니기도 했고 잔뜩 굳어있는 진지한 얼굴에서 보쿠토의 진심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카아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테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그것도 동성인 선배에게 갑작스런 고백을 받는다면. 보쿠토의 뜬금없는 고백을 들은 후 부터 아카아시의 심장은 요란하게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왜요?"

"...좋아하니까?"

"지금 그거 고백이죠?"


  단순한 사람인건 알았지만 이렇게 고백도 돌직구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장해서 빨개진 귀를 제외한다면 보쿠토는 별로 여느 때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아카아시는 오히려 제가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보쿠토가 더 얄미워 보였다.


"고백을 그렇게 하는 게 어딨어요?"


  심호흡 할 시간도 안 주고,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보쿠토의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아카아시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눈에 띄게 풀이 죽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어린애마냥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보쿠토는 뭔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달만 사귀자! 그 뒤는 네가 결정하면 되잖아."


  그리고 다시 눈치를 살핀다. 아카아시가 또 화를 내는 건 아닐까하고. 나름대로 머리를 써 겨우 짜낸 묘안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카아시의 대답이 늦어지자 보쿠토의 눈썹이 또 추욱 쳐졌다. 아카아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보쿠토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끝부분만 빨갛던 보쿠토의 귀가 완전히 새빨개졌고 얼굴도 잔뜩 달아올랐다. 그렇게 좋을까. 홧홧한 얼굴을 커다란 손바각으로 텁 가린 보쿠토의 모습이 그 답잖게 수줍은 소녀 같았다. 


"그럼 사귀는 거야, 오늘부터!"


  보쿠토는 부끄러움을 못이기고 결국 먼저 갈게, 하고 옥상 계단을 우당탕탕 뛰어내려갔다. 옥상에 혼자 남은 아카아시는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결국 한숨만을 내뱉고 말았다.  








그래 연애나 해 보쿠아카 핫핳ㅅ핫핫 



Posted by 모냐모 :

* 인사이드아웃 설정을 가져왔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셨다면 이해가 잘 안 되실 수도 있어요 ㅠ0ㅠ 




  누구에게나 기쁨과 슬픔, 공포, 분노 등의 감정이 있듯 보쿠토의 세계에도 그것들은 살고 있었다. 대신 보쿠토의 세계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구 등의 보통 크기의 섬들이 옹기종기 있었고 그 중에도 가장 큰 섬은 배구섬이었다. 섬이라고 할까, 대륙이라고 할까. 그만큼 배구섬은 보쿠토의 세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쿠토는 매일 배구 연습을 했고 배구 대륙은 보쿠토의 밝은 성격만큼이나 항상 화려하게 반짝였다. 


"헤이헤이헤이! 오늘도 연습!"


  보쿠토의 기쁨은 껑충껑충 덤블링을 하며 컨트롤러 앞까지 다가왔다. 아주 가끔 슬픔에게 리더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감정들의 리더는 기쁨이었다. 보쿠토의 쾌활한 성격 탓에 보쿠토의 감정들은 대체적으로 밝은 편이기는 했다. 심지어 슬픔조차도 다른 이들의 슬픔에 비하면 발랄한 정도였다. 그러나 밝고 유쾌한 보쿠토의 세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저 이제 배구 그만 하려고요."


  아카아시의 폭탄선언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카아시?!"


  5초정도 얼어붙어 있던 보쿠토가 겨우 입을 열었다. 배구를 안하겠다니?! 너무 큰 충격에 감정들은 다 같이 굳어 버렸다. 이게 슬픔인지 공포인지 분노인지, 그저 그대로 얼어버린 채 아카아시의 단호한 표정이 떠오른 스크린만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 때 슬픔이 앞으로 나섰다. 뭔가에 홀린 것처럼 걸어나온 슬픔이는 컨트롤러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삑. 삑. 삑. 삑. 삑.


"아카아시이... 왜 그래? 화났어? 응?"


  보쿠토의 머릿속은 아수라장이었다. 컨트롤러에 거의 찰싹 붙은 채로 버튼을 삑삑거리는 슬픔이, 망연자실해서 아직도 굳어있는 기쁨이, 어떻게 좀 해보라며 기쁨이의 등을 퍽퍽 치는 버럭이와 까칠이, 그리고 슬픔이의 옆에서 아카아시는 내가 싫어진게 아닐까, 하고 덜덜 떨고 있는 소심이까지. 그 와중 아카아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왜 그래?!?!?!?! 보쿠토의 세계에 사는 모든 감정들이 외쳤다. 파랗게 번쩍이는 보쿠토의 핵심기억이 떼구르르 굴러나왔다. 보쿠토의 세계는 그렇게 대폭발의 날을 맞이하고 말았던 것이다. 





내가 쓰고도 너무 병신같아서 트위터에 안올리고 여기만 살짝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Posted by 모냐모 :

* 센티넬버스 주의 




 쿠로오는 아침부터 줄곧 몸을 둥글게 말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팔에 얼굴을 묻은 채로 몇 시간 째 같은 모습이었다. 이럴 때 쿠로오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언제나 유들유들 성격 좋은 쿠로오가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이유는 단 하나였다. 켄마의 부재. 누가 잘못 건드리면 폭발하기라도 할 것 같았다. 가끔 까칠할 때가 있기는 했지만 오늘이 제일 불안정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쿠로오에게 말을 걸 생각을 못했다. 몸상태가 좋지 않으면 조퇴를 하고 쉬면 될텐데도 쿠로오는 고집스럽게 제 자리를 지켰다.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책상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던 쿠로오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난 쿠로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교실 문이 열렸다. 켄마는 타박타박 교실 안으로 들어서선 쿠로오의 앞까지 다가갔다.


"쿠로."


  켄마가 쿠로오의 이름을 불렀다. 켄마는 어찌 된 일인지 상태가 엉망이었다. 한쪽 팔은 붕대로 칭칭 감아 깁스를 했고 입술은 터진 데다 잔상처도 한가득이었다. 쿠로오는 그렇게 기다리던 켄마를 앞에 두고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켄마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켄마는 한 걸음 한 걸음 쿠로오에게로 다가가 우뚝 멈춰선 쿠로오를 껴안았다. 


"놀랐지? 괜찮아."

"...다쳐놓고 뭐가 괜찮아."

"다 괜찮아."


  나가자. 켄마는 쿠로오를 다독여 교실 밖으로 나오게 했다. 이 이상한 콤비에게로 모든 시선이 쏟아졌으나 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켄마는 한 팔에 깁스까지 해서 움직이는 게 힘들어 보였는데도 켄마가 쿠로오를 부축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쿠로오의 걸음에 힘이 없었다. 그에 비해 켄마는 몸의 상처들만 빼면 평소와 다를바 없었다. 이 정도가 뭐가 문제냐는 듯, 덤덤했다.


  교실과 복도, 운동장과 교문을 모두 벗어나 바깥까지 나와서야 쿠로오는 조심스럽게 켄마의 멀쩡한 손을 잡았고 켄마는 그에 응하듯 손을 마주 잡아주었다. 켄마가 쿠로오와 눈을 맞추려 올려다보았으나 쿠로오는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었다.


"쿠로, 나 봐."

"미안."

"나 좀 봐."


  켄마는 쿠로오가 제 눈을 쳐다볼 때까지 기다렸고 겨우 쿠로오와 눈을 맞췄다. 불안정한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쿠로가 잘못한 게 아니야. 켄마가 말했으나 쿠로오는 그 말을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 제 잘못이었다. 켄마가 이렇게 된 것은. 켄마를 다치게 한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었으나 이렇게 크게 다치게 한 것은 처음이라 쿠로오는 겁이 났다. 그러면서도 켄마와 닿고 켄마의 손을 잡으면 주위가 고요하고 평화로워져서 그것에 안도하는 제가 싫었다.


  켄마는 쿠로오의 가이드였다. 가이드가 센티넬 때문에 상처입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은 아니었다. 능력이 강할 수록 컨트롤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쿠로오는 능력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 센티넬 중 하나였다. 그 정도 레벨이면 관리 기관으로 넘겨지게 된다고 들었지만 켄마덕에 쿠로오는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켄마와 닿으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세게 몰려오던 감각들이 가라앉았다. 아주 먼 곳에서부터 전부 생생하게 들리는 소리가 고요해졌고 피부에 닿는 공기, 지나치게 넓은 시야,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평화로웠다. 켄마에게는 귀찮은 일일지 모르지만 쿠로오에게 켄마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쿠로오는, 켄마를 다치게 했다. 불안정하게 터져나온 능력 탓에 진정시키려던 켄마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떤 것이다. 쿠로오는 켄마의 손을 놓았다. 다시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다른 가이드 찾아본다고? 고집 피우지 마."


  쿠로오가 뭐라고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켄마는 말을 딱 잘랐다. 


"누가 그래도 된대? 쿠로 가이드는 나야."


  켄마는 단호했다. 키도 저보다 한 뼘은 작고 그렇게 말랐으면서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쿠로가 가는 데는 나도 갈 거야. 켄마가 쿠로오의 손을 잡은 채로 말했다. 시끄럽고 어지럽던 주변이 점점 조용해졌다. 


"고마워."

"그거 말고."

"좋아해."

"키스 해줘."


  쿠로오의 고백에 만족한 듯 켄마는 가까이 다가섰다. 쿠로오가 켄마에게 깊게 입을 맞추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고 혀가 섞였다. 쿠로오의 세상은 켄마와 함께일 때 가장 평화로웠다. 

  



~(ㅇㅅㅇ)~

쿠로켄입니다 켄쿠로가 아닙니다 이말을 덧붙여야할 것 같앗다 ㅎㅁㅎ



Posted by 모냐모 :

  후우. 깊은 숨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가 떠올랐다. 켄마의 가는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가 매달려 있었다. 켄마는 다시 숨을 들이쉬며 눈을 감았다. 무겁고 탁한 연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일어나 앉기도 버거워 켄마는 누운 채로 담배와 라이터를 향해 꾸물꾸물 손을 뻗었다. 들숨, 날숨. 눈을 반쯤 같고 공기 속을 떠다니는 연기를 보고 있는데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시선이 느껴졌다.


"왜 그렇게 봐?"

"켄마, 나랑 섹스하는 거 싫어?"


  쿠로오는 한쪽 팔로 제 머리를 받치고 켄마와 켄마의 담배연기를 쳐다보았다. 후욱. 쿠로오가 힘을 주어 바람을 불자 뭉게뭉게 떠다니던 담배 연기가 흩어졌다. 켄마는 웃었다. 쿠로오의 얼굴이 정말로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좋은데?"


  켄마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명쾌했다. 그 말대로 켄마는 쿠로오와의 섹스를 싫어하지 않았다. 쿠로오와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이 닿는 것도 좋았고 저를 갈구하는 쿠로오의 눈빛도 좋았고 도중에 제 이름을 부르는 쿠로오의 목소리도 좋았고, 쾌감도 좋았고. 끝나고 나면 온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어 축 늘어지게 되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켄마가 대답했음에도 쿠로오는 으음, 하고 또 아리송한 표정을 할 뿐이었다. 켄마가 되물었다. 왜? 무슨 질문일까, 그게.


"나 기분 이상하니까 그거 좀 안 하면 안돼?"

"뭐?"

"섹스하고 담배 피우는거."


  쿠로오의 시선이 켄마의 손가락 사이에 향해 있었다. 켄마는 성인이 되고 바로 담배를 배웠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일을 하면서 담배도 점점 늘었다. 헤비스모커까지는 아니었지만 없으면 허전할 정도는 되었다. 처음에는 쿠로오에게 담배를 숨겼지만 거의 매일 보는 사이에 숨기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의외로 쿠로오는 화를 내지 않았다. 표정이나 반응을 봐서는 싫지만 강제로 그만두게 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켄마는 다시 몸을 일으켜 탁자 위의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껐다. 


"내가 강제로 순결 뺏긴 아가씨라도 된 것 같다고."


  푸흡. 켄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렸다. 웃지마. 쿠로오가 얼굴을 찡그렸다. 켄마가 너무 웃어대자 민망해졌는지 켄마의 얼굴을 큰 손으로 덮어버렸다. 그럼에도 켄마의 웃음은 한참 멈추지를 않았다. 


"나도 담배 피워볼까?"

"아니. 몸에 안 좋아."


  그렇게 웃다가도 쿠로오의 물음에는 꼭 같은 답을 했다. 쿠로오가 켄마의 흡연을 처음 알고 물었을 때에도 그랬다. 나도 피울까, 했더니 켄마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더랬다. 쿠로는 안돼. 몸에 안 좋아. 마치 어른이 아이를 대하듯 했다. 쿠로오는 그 때도 지금도 어이가 없어 피식 웃어버렸다. 몸을 돌려 쿠로오와 마주보곤 쿠로오의 목 뒤로 손을 감았다. 켄마가 먼저 입을 맞췄다. 쿠로오는 꼭 붙어오는 켄마의 서늘한 몸을 껴안았다. 키스는 담배처럼 알싸하고 텁텁했다. 







이걸쓰면 녹차님이 쿠로켄을 써주기로 햇다 ㅇ0ㅇ 그래서 쓴거시다 (조나 


Posted by 모냐모 :

  용사 쿠로오는 모험을 시작했다. 뿅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걷다가 작은 칼을 휙휙 휘두르며 몬스터와 싸우고 때로는 길가에서 보물상자를 발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게임기 전원을 켜는 법도 몰랐던 나는 어느새 게임에 푹 빠져들었다. 내가 게임에 집중하고 있을 때 내 병실에 온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었다. 거봐 재밌잖아, 라는 얼굴이었다. 그러는 동안 게임 진행률은 과거의 내가 진행한 만큼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나는 퇴원을 했다. 퇴원하는 날 부모님 대신 쿠로오가 왔다. 아침 시간에 딱 맞춰서 찾아온 그는 내게 커다란 꽃다발을 턱 안기곤 웃었다. 퇴원 축하한다고. 사실 그게 축하할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건넨 커다란 꽃다발은 싫지 않았다. 짐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몇날며칠을 병실에서 지내다보니 짐꾸러미가 꽤 커다랬다. 쿠로오는 제 등에 내 짐가방을 짊어졌다.


"연습은요?"

"연습이 문제야? 만날 하는 연습..."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연습에 꽤나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중에 따라 가도 돼요? 연습..."


  나도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움직이는 건 싫고 배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의 표정이 밝아진 것 하나만으로 꽤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묵묵히 걷던 그가 수다스러워졌다. 다른 애들도 좋아할 거야, 코트에 서 보면 다시 기억이 날지도... 그러다 말이 뚝 끊겼다. 


"꼭 무리해서 기억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그의 말꼬리가 흐려졌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기억을 찾도록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았으면서, 여태 기억에 관해선 한마디도 안해놓고선.


"나도 알아, 쿠로."


  그런 그가 안쓰러워서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쿠로오의 눈이 커졌다. 긴 잠에서 깨어나 기억을 잃고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그는 내게 친근하게 굴었지만 나는 그가 멀게 느껴지기만 했다. 친구라면 테츠로라고 불렀던 걸까. 아니면 쿠로오? 갑작스레 튀어나온 쿠로, 라는 호칭과 편한 말투에 나도 놀라고 말았다. 쿠로오는 그래, 하고 내 어깨를 토닥이기만 했다. 




Posted by 모냐모 :

  남자는 오늘도 찾아왔다. 매일 찾아오는 그 시간이었다. 머리가 제멋대로 삐쳐있지만 그것이 도리어 자연스러웠다. 켄마! 하고 부르고선 눈이 마주치면 씨익 웃는다. 그는 올 때마다 손에 군것질거리를 들고 있었다. 음료수일 때도 있었고 과일일 때도 있었으며 쿠키나 파이 같은 달달한 간식일 때도 있었다. 오늘은 케이크였다. 그는 침대 옆 탁자에 케이크를 올려두고 침대에 엉덩이를 붙였다.


"오늘은 밖에 좀 나갔어?"

"아뇨."

"밖에 날씨 좋은데, 좀 걷지 그랬어."


  그가 내 병실에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그에게 물었다. 누구세요.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나 싶더니 이내 씨익 웃었다. 쿠로오 테츠로야. 네 소꿉친구야.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가 그렇다고 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아는 것보다 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내 과거, 현재. 


"같이 나갈까? 걸을래?"

"..."

"귀찮지?"


  내가 대답하지 않았더니 그가 정확히 내 속마음을 읽어냈다. 기억을 잃었는 데도 이런 점은 변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남자는 배구선수라고 했다. 움직이는 것이 싫은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는 나도 배구를 했다고 말해주었다. 처음으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배구라니, 그런 거 할 리 없잖아. 별로 할 말이 없어 괜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더니 그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어 건넸다.


"이게 뭐예요?"

"네 거야."


  뭔가 전자기기인데, 핸드폰은 아니고. 게임기인가. 내가 그것을 손에 든 채 멀뚱멀뚱 보고만 있자 그가 전원을 켜주었다. 요란한 소리와 알록달록한 화면이 떠올랐다. 전원이 켜졌지만 버튼이 너무 많았다. 그가 게임기를 이리저리 조작하자 세이브파일이 떠올랐다. 1. 코즈메 켄마. 2. 코즈메 켄마. 3. 코즈메 켄마. 내 이름이었다. 전부 내 이름으로 된 파일들이 주루룩 저장되어 있었다. 사고가 난 날 바로 전 날까지의 기록이었다. 


"잘 모르겠으면 처음부터 해. 새 파일 만들어서."

"어떻게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그가 내 옆으로 더 바싹 붙어 앉았다. 그는 내 손에 제 손을 겹쳐 게임기 조작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시작할 땐 세모, 취소할 땐 네모... 모험을 시작하는 용사의 이름을 정해달라는 문장이 화면에 떠오르자 그는 게임기를 가져가 화면을 톡톡 두드렸다. 쿠로오 테츠로. 자기 이름이었다. 어이가 없어 조금 웃었더니 멋쩍은지 그도 따라 웃었다. 


"이제 퇴원할 때까지 안 심심하겠지?"


  게임기 화면 속 용사가 뿅뿅거리는 소리를 내며 걸어다녔다. 용사는 쿠로오라고 하기에 너무 작았다. 실제 남자는 고개를 꺾어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키가 컸는데. 키가 크고 다리가 길고 손도 커서, 운동선수는 다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하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병원 생활은 지루하지 않았다. 침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밥을 먹고 약을 먹고 또 조금 있으면 쿠로오가 찾아왔다. 그는 내가 정신을 차린 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왔고, 사정이 있는 날에는 내일은 못 온다고 꼭 그 전날 통보를 했다. 그렇게까지 해야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맨 처음 내가 뭐라고 이렇게 귀찮을 정도로 신경 써주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친구니까, 하고 대답했다. 그 순간 잠깐 보였던 슬픈 얼굴 때문에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가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이 싫었다. 고맙다는 소리가 목구멍 밖으로 잘 나오질 않아서 나는 괜히 게임기 속의 용사 쿠로오를 뿅뿅 뛰게 만들었다. 






왜 썼지 ㅇㅅㅇ?

Posted by 모냐모 :

* 이와오이 의 추천 연성용 대사는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입니다!




숨바꼭질






  오이카와가 이상해졌다. 아침에 학교에 같이 가려고 집 앞에서 불렀더니 대답이 없었다.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일찍 학교에 갔다고.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꾸벅하곤 돌아나왔다. 해가 서쪽에서라도 떴나, 하늘을 봤는데 해는 멀쩡히 동쪽에 떠 있었다. 매일 몇 번은 소리쳐야 꾸물꾸물 나오는 오이카와였는데. 확실히 이상했다. 걸음을 재촉한 이와이즈미가 학교에 도착해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체육관이었다. 


"야, 오이카와!"


  다짜고짜 오이카와를 부르며 체육관 안에 들어섰는데 오이카와는 체육관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이즈미가 인상을 콱 찌푸렸다. 라커룸에는? 괜히 짜증이 나서 라커룸으로 가 봤지만 그곳에도 오이카와는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주머니 속의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도 전화도 들어와있지 않았다. 손 끝으로 꾹꾹 눌러가며 문자를 보냈다. 


[쿠소카와 어디야]


  문자를 보내놓고 1분도 기다리지를 못해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가는데 전화는 받지 않았고 곧 음성메시지로 넘어가버렸다. 아아, 오이카와 씨는 지금 바쁘니까 메시지를 남기거나 조금 뒤에 연락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익살스러운 목소리를 듣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다. 그러니까 뭘 하느라 그렇게 바쁜 건데, 이 아침에? 설마 땡땡이라도 칠 생각인걸까.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반에 찾아가 보려고 했으나 이미 수업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 뒤로도 이와이즈미는 쉬는 시간마다 오이카와의 반에 찾아갔다. 갈 때마다 자리는 비어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던가, 교무실에 갔다던가, 도서관에 갔다던가. 도서관 얘기를 듣자마자 이와이즈미는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안 어울리게 도서관은 무슨 도서관? 이와이즈미는 결국 쉬는 시간에 오이카와를 찾는 것을 포기했다.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를 찾은 것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조금 뒤였다.


"기껏 고르고 골라서 여기냐?"

"이, 이와쨩!"


  옥상 구석자리에서 우유빵을 물고 있는 오이카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숨으려면 제대로 숨을 것이지, 둘이 자주 오던 곳에 숨어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저를 찾아온 것에 진심으로 놀란 듯 했다. 오이카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숨바꼭질 끝났다."

"그, 그런거 아닌데? 숨바꼭질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곁에 털썩 앉아서 우유를 건넸다. 또 마실 건 까먹었겠지. 아니나 다를까 오이카와는 물도 우유도 없이 우유빵만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거짓말도 드럽게 못하는게. 당황스러움이 오이카와의 얼굴에 고스란히 떠올라 있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건넨 우유를 단숨에 꿀꺽꿀꺽 들이켰다.


"왜 숨어?"


  콜록콜록, 콜록콜록콜록.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우유를 마시다 말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멍충이라고 부르면서도 등을 두드려 주었다. 겨우 기침을 멈춘 오이카와가 옷소매로 입가를 스윽 닦고는 휴,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 숨었어."

"어제 일 때문에 그래?"


  이와이즈미의 말에 또 다시 침묵. 답지않게 조용한 오이카와가 익숙치 않았다. 못 물어볼 걸 물어본 것도 아닌데. 이와이즈미도 조금 놀라기는 했다. 둘이 나란히 걸어 집으로 가던 길,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고백을 받았다. 이와쨩, 좋아해, 하고. 처음에는 장난치는 건가, 하고 생각했지만 오이카와는 진지했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집 앞에 도착해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는 헤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답을 해주려고 했는데. 오이카와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부처님 손바닥안이었지만.


"이럴 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단 말야."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울보가 따로없던 어린 시절 이후로 오이카와의 풀죽은 모습은 참 오랜만이었다. 그런 오이카와가 좀 귀여웠지만 이와이즈미는 그저 오이카와의 입가에 묻은 우유 크림을 손으로 슥슥 닦아줄 뿐이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수업 끝나고 너네 반 앞에 갈 거니까, 도망치면 죽어. 나 먼저 간다."


  이와이즈미는 새빨간 얼굴의 오이카와만 두고 옥상을 휙 나왔다. 심장이 쿵쿵으로 모자라 쾅쾅 뛰고 있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제 귀가 빨갰던 것을 오이카와에게 들켰을지도 모른다. 원래 만나자마자 바로 얘기해줄 생각이었지만 대답은 조금 더 아끼기로 했다. 속 좀 타 보라지, 내가 속 탄 만큼. 오이카와의 새빨간 얼굴을 생각하자 자꾸만 웃음이 났다. 


  






진단메이커 너무 조아 ㅇ0ㅇ!


Posted by 모냐모 :

"쿠로."

"응."


  켄마의 무릎에 엎드려 늘어져 있던 쿠로오는 켄마의 부름에 살짝 눈을 떴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켄마의 얼굴이 흐릿하게 들어왔다. 잠깐 누워있었더니 깜박 잠이 들어버렸다. 켄마는 이리저리 제멋대로 뻗친 쿠로오의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었다.


"고양이 같아."


  켄마의 말에 쿠로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할 소릴. 쿠로오는 켄마의 말랑한 허벅지에 얼굴을 부볐다. 쿠로오는 웃었지만 켄마가 보기에 쿠로오의 날렵한 몸과 나른한 표정 같은 것들이 영락없이 고양이 같았다. 켄마는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옆에 놓인 게임기를 집기 위해 손을 뗐다. 슬그머니 눈을 뜬 쿠로오가 켄마의 손을 덥석 잡아 다시 제 머리 위에 턱하니 올려놓았다.


"쓰다듬어 줘."

"쓰다듬어 줬잖아."

"더."


  빨리. 쿠로오가 재촉했고 켄마는 하는 수없이 쿠로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후우. 쿠로오에게서 기분좋은 한숨이 샜다. 마치 고양이가 고르릉거리기라도 하는 듯 했다. 네코마의 주장으로 어딜 가나 인기가 많고 당당한 쿠로오였으나 켄마와 둘이 있을 때는 어리광쟁이가 됐다. 켄마는 모두들 쿠로오가 어른스럽고 저를 동생처럼 보살핀다고 생각하는 것이 조금 억울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쿠로오의 어리광에 대해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저만 아는 쿠로오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짧지만 그냥 쓴거에 의의를 두기로ㅜㅜ 고자고자하다

Posted by 모냐모 :

* 하이큐 보쿠아카 - 직접적인 잠자리 묘사는 없으나 언급이 있습니다






Punch Drunk Love 下

 





  무릎 위에 다소곳하게 올려진 보쿠토의 주먹이 꿈지럭거렸다. 와글와글 붐볐던 라커룸은 모두들 집에 돌아간 뒤 조용해졌다. 보쿠토는 빈 라커룸에 앉아 아카아시가 씻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닫힌 샤워실 문 너머로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 저도 모르는 새에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흰 가슴팍과 쭉 뻗은 다리를 떠올리곤 황급히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궈내기를 반복했다. 


  보쿠토는 교무실에 불려가도 이렇게 쫄아드는 타입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호출한 것이 아카아시였고 호출의 이유를 알 것 같았기 때문에 더 긴장을 했다. '그 날 밤'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자꾸만 뭉게뭉게 피어올라 보쿠토는 오늘 좀처럼 연습에 집중하지를 못했다. 결국 아카아시에게 혼이 났고 저도 혼날만 한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보쿠토 선배."


  아카아시의 부름에 보쿠토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카아시의 머리칼에서 아직까지 물기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한 번 의식하기 시작하자 눈을 마주칠 수조차 없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연습에도 지장이 있을지도... 아카아시는 터벅터벅 걸어와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었다. 보쿠토가 굳어있는 동안 가방을 챙기고 라커 정리를 마친 아카아시가 심호흡을 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보실 거예요?"

"어? 뭐?"

"언제까지 그렇게 빤히 보실 거냐고요."


  물론 아카아시가 모를리 없었다. 그렇게 집요하게 시선이 따라붙는데 깨닫지 못하면 그게 바보 아닐까. 게다가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면 황급히 눈을 피하길 몇 번. 수상쩍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시선을 피하던 보쿠토가 고개를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아?"


  그렇게만 대뜸 물었다. 아카아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아카아시가 신경이 쓰여서 아주 죽을 지경인 저와는 다르게 아카아시는 평소와 다른 것이 없어보였다. 연습도 평소대로, 말하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어색한 데가 없었다. 아카아시의 얼굴도 쳐다보질 못하는 보쿠토와는 정반대였다. 아카아시의 입술이 달싹였다.


"사실대로 말해도 돼요?"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말에 다시 한 번 잔뜩 긴장했다. 무슨 엄청난 사실이기에? 무섭긴 하고 또 말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직도 허리가 좀 아파요."


  아카아시는 보쿠토를 탓하는 듯한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는 허리를 통통 두드렸다. 


"허리요. 아직도 아프다고요."


  보쿠토가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걸렸다. 아카아시의 말을 이해한 보쿠토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보쿠토가 커다란 손바닥으로 수줍은 소녀마냥 얼굴을 감췄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저렇게 덤덤하게 말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야한 거야? 보쿠토 선배.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이름을 부르곤 보쿠토가 얼굴을 감춘 손을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안 괜찮았어요. 선배 볼 때마다 생각나서..."


  아카아시의 얼굴이 보기 드물게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민망함에 아랫입술을 잘근거리던 아카아시는 결국 옷소매로 얼굴을 가렸다. 항상 덤덤하던 아카아시가 저렇게나 동요하는 것은 처음 봤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아무런 감정도 흔들림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보쿠토는 안절부절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카아시의 얼굴을 보려고 기웃거렸다.


"아카아시, 미안. 미안해. 그 날은..."

"그 날 일로 그러는 거면 사과는 됐어요. 선배가 강제로 한 것도 아니잖아요."


  아카아시의 말대로 그 날에는 아카아시와 보쿠토, 두 사람 다 취해 있었다. 어느 한 쪽이 강제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두 사람 모두의 실수였을 따름이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조금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카아시는 달아오른 얼굴이 살짝 가라앉은 후에야 얼굴을 가린 팔을 내렸다.


"저도 죄송해요. 좀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렸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선배가 기분 나쁠까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생각이었는데..."


  애초에 보쿠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 수 있을만큼 덤덤하지 못했다. 작은 것에도 크게, 큰 것에는 더 크게 반응했다. 아카아시 또한 그랬다.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결국은 보쿠토가 떠오르고 말았다. 흥분으로 달아올라 색이 짙어진 보쿠토의 얼굴과 살짝 찌푸려진 미간, 진지한 표정이. 집요하게 따라오는 보쿠토의 시선에 아카아시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보쿠토는 몇 겹으로 세워놓은 방어막을 몇 번이고 깨트려버린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그런 점이 성가셨고 무서웠고, 좋았다. 


"나도 사과는 됐어. 하나도 기분 안 나빴는데?"


  보쿠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아카아시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누가 들을새라 손을 귓가에 가져다대곤 속삭인다.


"그럼 또 해도 돼?"


  또 장난인가 했더니 보쿠토의 얼굴은 진지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가까이 다가온 틈을 타 팔꿈치로 보쿠토의 배를 쿡 찔렀다. 어윽. 보쿠토의 몸이 앞으로 푹 수그러졌다. 그제야 아카아시의 입가에서 웃음이 샜다.


"맨정신일 때요."







별로 길지도 않은데 상하로 나눈것은 순전히 와따시가 고자이기 때무니다 

체력이 고자고자... 낼 왜 월욜이야 왜 그런거야 애왜왜

Posted by 모냐모 :

* 하이큐 보쿠아카 - 직접적인 잠자리 묘사는 없으나 언급이 있습니다






Punch Drunk Love 上






  머리가 아프고 속은 좀 메스꺼웠다. 술을 마신 것이 처음이었으니 취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 모범생으로 각종 교칙과 일반 상식을 지켜왔던 아카아시 케이지는 제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불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었고 허리며 목이며 어디 하나 안 아픈데가 없었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제 곁에서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보쿠토 코타로였다. 두려움에 떨며 이불을 슬쩍 걷었다. 그 또한 맨몸이었다. 후우. 다시 이불을 고이 덮어주었다. 


  아카아시는 아직도 도롱도롱 곤히 잠든 보쿠토를 두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들이 널려 있었다. 아카아시의 티셔츠는 얼마나 잡아뜯겼는지 목이 잔뜩 늘어나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아카아시는 당황한 것 치고는 상당히 침착하게 욕실로 향했다. 다리 사이가 끈적한 것이 견딜 수 없이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피할 땐 피하더라도 좀 씻어야 할 것 같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찬물을 맞자 정신이 천천히 돌아오는지 지난 밤의 일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연습이 끝나고 슬그머니 다가온 보쿠토의 얼굴에는 장난기와 흥분이 가득했다. 아카아시~ 우리집에 좋은 거 있는데 잠깐 들렀다 갈래? 킥킥거리는 것이 매우 수상쩍었지만 혼자 두면 사고를 칠 것 같아 따라 간 것이 사고의 시작이었다. 보쿠토는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집이 비었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신나했다. 그런 그가 방 안에서 들고 나온 것은 과일주였다. 


"뭐예요, 그게."

"술!"

"이게 좋은 거예요?"


  좋은 게 뭔가 했더니. 새 배구화라도 샀나 했다. 전 가볼게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카아시를 보쿠토는 기어이 붙잡았다. 술은 혼자 마시면 맛이 없다나 뭐라나. 나름 구색을 맞춘답시고 과자까지 꺼내 안주를 삼고 커다란 잔에다가 술을 가득 담아 마셨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사실 어떻게 해서 침대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일주는 달달했지만 도수가 높았고 알콜에 면역이 없는 둘은 금방 취하고 말았다. 찬물을 맞고 있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조각난 장면만이 아카아시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제 위에서 움직이는 보쿠토. 몸 속을 콱콱 치받는 것. 제 이름을 부르던 보쿠토의 목소리. 그리고 보쿠토를 애타게 찾아 그를 끌어안던 제 모습까지. 미쳤다, 진짜 미쳤다.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욕실에서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자고 있어라, 몰래 빠져나가게. 최대한 천천히 물기를 닦은 아카아시는 속옷과 바지만 대강 꿰어입었다. 가방을 가지러 보쿠토의 방에 다시 갔다가 잠이 깬 보쿠토와 눈이 딱 마주쳤다. 침묵이 흘렀다. 어색함에 숨이 딱 넘어갈 것만 같았다.


"굿모닝, 아카아시."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리고 다시 침묵. 보쿠토는 원래 표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다. 보쿠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혼란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하지 말지. 이불을 꼭 쥔 손을 보니 전부 기억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속 괜찮아요?"

"응, 근데 어제 밤에..."


  보쿠토가 입을 열자 아카아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마, 제발. 민망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니까. 다행히도 아카아시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보쿠토는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책임진다느니 그런 말 하기만 해봐.


"내가 책임질게!"


  기어코 하고야 만다. 비장한 각오로 주먹을 불끈 쥔 보쿠토를 앞에 두고 아카아시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아카아시가 대답이 없자 보쿠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싫어? 아카아시는 거실로 나갔다.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티셔츠 쪼가리를 대충 들어다가 여전히 풀죽은 얼굴로 침대 위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앉아있는 보쿠토의 얼굴에다가 던졌다. 가볍게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보쿠토의 얼굴이 가려졌다.


"옷부터 입어요."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던진 티셔츠를 대강 입었다. 아카아시가 먼저 거실로 나오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보쿠토가 따라나왔다. 아픈 속을 달래려고 간단한 과일주스로 아침을 떼우면서도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아카아시는 옷 안 입어?"


  아카아시가 셔츠를 입지 않은 맨몸인 것이 신경쓰이는 듯 했다. 연습하고 옷을 갈아입고 또 샤워를 하면서 몇 번이나 본 모습인데도 보쿠토는 유난히 민망해 했다. 


"빌려주세요."


  어제 보쿠토 상이... 아카아시가 입을 열자 보쿠토가 켁, 하고 기침을 했다. 과일주스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제를 기억하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릿했던 기억은 선명해진다. 잠에서 깼을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도 지금은 비디오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어젯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옷 아래로 손을 집어 넣고, 술에 취해 옷이 잘 벗겨지지 않자 옷을 마음대로 잡아당겨 망가트렸던 것이다. 힘도 세, 진짜. 보쿠토는 한참이나 콜록거렸고 기침이 멈춘 뒤에는 제 옷장에서 최대한 깨끗한 새 셔츠를 꺼내 아카아시에게 빌려주었다. 덩치차이가 조금 있어서 아카아시에게는 옷이 헐렁했다. 


"오늘 휴일이라 다행이다."

"그러게요. 먼저 가볼게요. 월요일에 봐요."


  아카아시는 숨막히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보쿠토의 집을 나왔다.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보쿠토를 떼어놓느라 애를 먹었다. 바깥까지 나와 골목 모퉁이를 돈 뒤에야 아카아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데 신경쓰느라 느끼지 못했던 허리와 목과 다리의 통증, 몸에 울긋불긋 새겨진 잇자국 등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망했어! 미쳤어!!! 아카아시는 아직 덜 마른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문질렀다.


 




  아카아시가 달렸다. 아카아시가 뛰어올랐다. 아카아시가 움직일 때마다 헐렁한 셔츠와 바지가 펄럭였다. 그 아래로 흰 피부가 어른어른 보였다. 보쿠토의 시선은 집요했다. 아카아시가 가는 곳마다 보쿠토의 눈이 따라갔다. 그러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칠 때면 어깨를 움찔 떨고는 안 그런척 딴청을 부렸다. 사실 이게 오늘 처음도 아니었다. 세번째였나, 네번째였나. 아카아시에게 벌써 한 번 혼이 났는데도 보쿠토의 시선은 아카아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또 혼이 날까봐 긴장했다가 아카아시가 다시 연습에 집중하면 또 다시 아카아시를 흘끗거렸다.


  그 날 밤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선명했다. 뜨겁게 얽혀지던 혀와 아카아시의 얼굴과 목소리와... 보쿠토는 고개를 탈탈 털어 제 머릿속을 꽉 채운 아카아시의 모습을 애써 지워냈다. 사실 주말 내내 그 모습이 떠올라서 보쿠토는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저도 모르게 아카아시의 이름을 부르곤 놀라기도 했다. 제가 아카아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가, 하고. 아카아시에게는 미안했지만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쭉 빠진 팔다리와 조금 나른한듯한 눈, 가라앉은 속눈썹, 흰 목덜미, 어디 하나 야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보쿠토의 목 뒤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보쿠토 선배."

"어? 어?!"


  아카아시의 부름에 보쿠토는 당황한 나머지 수상쩍게 반응하고 말았다. 집중하지 않는다고 혼이 날거라 생각했는데 아카아시가 한 말은 그것보다 훨씬 무서운 말이었다. 


"오늘 연습 끝나고 얘기 좀 하시죠."


  헙. 보쿠토는 숨을 삼켰다. 올 것이 왔다. 어떤 말로 혼이 날지 걱정이 됐다. 아니면 제가 아카아시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던 걸 들켰는지도 모른다. 주말이 지나 아카아시와 만났지만 아카아시는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일 테다. 아카아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 날 밤 일에 대해 자꾸만 떠올리는 것은 보쿠토 혼자인듯 했다. 아카아시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 쓰레기. 보쿠토는 들고 있던 배구공으로 제 머리를 콱콱 쥐어박았다. 








별로 안어렵게 슥슥 써서 더 쓰면 더 상하 안나누고 다 쓸 수 있을 것도 같앗는데 졸리다 너무 졸려 졸려버렷 ㅇ0ㅇ

제목은 샤이니 노래... 고마워요 샤이니 샤이니짱 (존나




Posted by 모냐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