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큐 보쿠아카 - 직접적인 잠자리 묘사는 없으나 언급이 있습니다
Punch Drunk Love 上
머리가 아프고 속은 좀 메스꺼웠다. 술을 마신 것이 처음이었으니 취한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 모범생으로 각종 교칙과 일반 상식을 지켜왔던 아카아시 케이지는 제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불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었고 허리며 목이며 어디 하나 안 아픈데가 없었다.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제 곁에서 아직도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 보쿠토 코타로였다. 두려움에 떨며 이불을 슬쩍 걷었다. 그 또한 맨몸이었다. 후우. 다시 이불을 고이 덮어주었다.
아카아시는 아직도 도롱도롱 곤히 잠든 보쿠토를 두고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옷들이 널려 있었다. 아카아시의 티셔츠는 얼마나 잡아뜯겼는지 목이 잔뜩 늘어나 버려야 할 지경이었다. 아카아시는 당황한 것 치고는 상당히 침착하게 욕실로 향했다. 다리 사이가 끈적한 것이 견딜 수 없이 찝찝했기 때문이었다. 자리를 피할 땐 피하더라도 좀 씻어야 할 것 같았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찬물을 맞자 정신이 천천히 돌아오는지 지난 밤의 일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연습이 끝나고 슬그머니 다가온 보쿠토의 얼굴에는 장난기와 흥분이 가득했다. 아카아시~ 우리집에 좋은 거 있는데 잠깐 들렀다 갈래? 킥킥거리는 것이 매우 수상쩍었지만 혼자 두면 사고를 칠 것 같아 따라 간 것이 사고의 시작이었다. 보쿠토는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집이 비었다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신나했다. 그런 그가 방 안에서 들고 나온 것은 과일주였다.
"뭐예요, 그게."
"술!"
"이게 좋은 거예요?"
좋은 게 뭔가 했더니. 새 배구화라도 샀나 했다. 전 가볼게요,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아카아시를 보쿠토는 기어이 붙잡았다. 술은 혼자 마시면 맛이 없다나 뭐라나. 나름 구색을 맞춘답시고 과자까지 꺼내 안주를 삼고 커다란 잔에다가 술을 가득 담아 마셨다.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사실 어떻게 해서 침대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과일주는 달달했지만 도수가 높았고 알콜에 면역이 없는 둘은 금방 취하고 말았다. 찬물을 맞고 있는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조각난 장면만이 아카아시의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제 위에서 움직이는 보쿠토. 몸 속을 콱콱 치받는 것. 제 이름을 부르던 보쿠토의 목소리. 그리고 보쿠토를 애타게 찾아 그를 끌어안던 제 모습까지. 미쳤다, 진짜 미쳤다. 그냥 콱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욕실에서 정말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차라리 자고 있어라, 몰래 빠져나가게. 최대한 천천히 물기를 닦은 아카아시는 속옷과 바지만 대강 꿰어입었다. 가방을 가지러 보쿠토의 방에 다시 갔다가 잠이 깬 보쿠토와 눈이 딱 마주쳤다. 침묵이 흘렀다. 어색함에 숨이 딱 넘어갈 것만 같았다.
"굿모닝, 아카아시."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리고 다시 침묵. 보쿠토는 원래 표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렀다. 보쿠토의 얼굴에 당혹스러움과 혼란과 불안함이 가득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기억하지 말지. 이불을 꼭 쥔 손을 보니 전부 기억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푹 쉬었다.
"속 괜찮아요?"
"응, 근데 어제 밤에..."
보쿠토가 입을 열자 아카아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아무 말도 하지마, 제발. 민망해서 죽어버릴 지경이니까. 다행히도 아카아시의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보쿠토는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책임진다느니 그런 말 하기만 해봐.
"내가 책임질게!"
기어코 하고야 만다. 비장한 각오로 주먹을 불끈 쥔 보쿠토를 앞에 두고 아카아시는 어떤 표정도 지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아카아시가 대답이 없자 보쿠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싫어? 아카아시는 거실로 나갔다.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티셔츠 쪼가리를 대충 들어다가 여전히 풀죽은 얼굴로 침대 위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앉아있는 보쿠토의 얼굴에다가 던졌다. 가볍게 펄럭하는 소리와 함께 보쿠토의 얼굴이 가려졌다.
"옷부터 입어요."
보쿠토는 아카아시가 던진 티셔츠를 대강 입었다. 아카아시가 먼저 거실로 나오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보쿠토가 따라나왔다. 아픈 속을 달래려고 간단한 과일주스로 아침을 떼우면서도 보쿠토는 아카아시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 아카아시는 옷 안 입어?"
아카아시가 셔츠를 입지 않은 맨몸인 것이 신경쓰이는 듯 했다. 연습하고 옷을 갈아입고 또 샤워를 하면서 몇 번이나 본 모습인데도 보쿠토는 유난히 민망해 했다.
"빌려주세요."
어제 보쿠토 상이... 아카아시가 입을 열자 보쿠토가 켁, 하고 기침을 했다. 과일주스가 목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어제를 기억하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릿했던 기억은 선명해진다. 잠에서 깼을 때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도 지금은 비디오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재생이 된다. 어젯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옷 아래로 손을 집어 넣고, 술에 취해 옷이 잘 벗겨지지 않자 옷을 마음대로 잡아당겨 망가트렸던 것이다. 힘도 세, 진짜. 보쿠토는 한참이나 콜록거렸고 기침이 멈춘 뒤에는 제 옷장에서 최대한 깨끗한 새 셔츠를 꺼내 아카아시에게 빌려주었다. 덩치차이가 조금 있어서 아카아시에게는 옷이 헐렁했다.
"오늘 휴일이라 다행이다."
"그러게요. 먼저 가볼게요. 월요일에 봐요."
아카아시는 숨막히는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보쿠토의 집을 나왔다.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 보쿠토를 떼어놓느라 애를 먹었다. 바깥까지 나와 골목 모퉁이를 돈 뒤에야 아카아시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다른 데 신경쓰느라 느끼지 못했던 허리와 목과 다리의 통증, 몸에 울긋불긋 새겨진 잇자국 등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망했어! 미쳤어!!! 아카아시는 아직 덜 마른 제 머리카락을 거칠게 문질렀다.
아카아시가 달렸다. 아카아시가 뛰어올랐다. 아카아시가 움직일 때마다 헐렁한 셔츠와 바지가 펄럭였다. 그 아래로 흰 피부가 어른어른 보였다. 보쿠토의 시선은 집요했다. 아카아시가 가는 곳마다 보쿠토의 눈이 따라갔다. 그러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돌려 눈이 마주칠 때면 어깨를 움찔 떨고는 안 그런척 딴청을 부렸다. 사실 이게 오늘 처음도 아니었다. 세번째였나, 네번째였나. 아카아시에게 벌써 한 번 혼이 났는데도 보쿠토의 시선은 아카아시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에게 또 혼이 날까봐 긴장했다가 아카아시가 다시 연습에 집중하면 또 다시 아카아시를 흘끗거렸다.
그 날 밤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선명했다. 뜨겁게 얽혀지던 혀와 아카아시의 얼굴과 목소리와... 보쿠토는 고개를 탈탈 털어 제 머릿속을 꽉 채운 아카아시의 모습을 애써 지워냈다. 사실 주말 내내 그 모습이 떠올라서 보쿠토는 스스로를 위로해야 했다. 저도 모르게 아카아시의 이름을 부르곤 놀라기도 했다. 제가 아카아시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던가, 하고. 아카아시에게는 미안했지만 절대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쭉 빠진 팔다리와 조금 나른한듯한 눈, 가라앉은 속눈썹, 흰 목덜미, 어디 하나 야하지 않은 데가 없었다. 보쿠토의 목 뒤로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보쿠토 선배."
"어? 어?!"
아카아시의 부름에 보쿠토는 당황한 나머지 수상쩍게 반응하고 말았다. 집중하지 않는다고 혼이 날거라 생각했는데 아카아시가 한 말은 그것보다 훨씬 무서운 말이었다.
"오늘 연습 끝나고 얘기 좀 하시죠."
헙. 보쿠토는 숨을 삼켰다. 올 것이 왔다. 어떤 말로 혼이 날지 걱정이 됐다. 아니면 제가 아카아시를 '그런' 눈으로 보고 있던 걸 들켰는지도 모른다. 주말이 지나 아카아시와 만났지만 아카아시는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일 테다. 아카아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그 날 밤 일에 대해 자꾸만 떠올리는 것은 보쿠토 혼자인듯 했다. 아카아시를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아, 쓰레기. 보쿠토는 들고 있던 배구공으로 제 머리를 콱콱 쥐어박았다.
별로 안어렵게 슥슥 써서 더 쓰면 더 상하 안나누고 다 쓸 수 있을 것도 같앗는데 졸리다 너무 졸려 졸려버렷 ㅇ0ㅇ
제목은 샤이니 노래... 고마워요 샤이니 샤이니짱 (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