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아시는 꼬깃한 쪽지를 손에 꼭 쥐고 계단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인 쪽지는 상당히 뜬금없었지만 쪽지를 펼쳤을 때 나타난 글씨는 낯익었다. 옥상으로 와. 그렇게만 쓰여있었지만 아카아시는 그것이 보쿠토의 글씨임을 바로 알아봤다. 체육관도 라커룸도 아닌 옥상이라니. 수업이 모두 끝난 뒤라서인지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쿠토 상."


  아카아시의 부름에 보쿠토가 휙하니 돌아보았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지 눈도 제대로 못맞추고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아카아시는 성큼성큼 보쿠토의 앞으로 다가가 손을 쑥 내밀었다. 손에는 보쿠토가 쓴 쪽지가 쥐어져 있었다.


"놀랐지?"

"놀라긴요. 딱 봐도 보쿠토 상 글씬데."

"그래?"


  역시 이름을 적지 않은 건 일부러 그런 것인지 보쿠토가 멋쩍은 듯 제 뒷머리를 손으로 슥슥 문질렀다. 물론 별 소용 없었지만. 무슨 얘기를 하려는데 이렇게 뜸을 들이는지, 보쿠토는 크흠하고 헛기침도 하고 괜히 뭔가 있는 척 먼곳도 한 번 쳐다봤다가 겨우 아카아시와 눈을 맞췄다. 안절부절 못하는 보쿠토를 앞에 두고 있자니 답답하기 보다는 같이 긴장이 되었다. 무슨 중대발표를 하려고? 아카아시는 보쿠토가 먼저 말을 꺼낼때 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크게 심호흡을 몇 번 한 보쿠토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귀자."


  ...3초 침묵. 


"네?"


  아카아시가 되묻자 보쿠토가 다시 한 번 말했다. 또박또박. 사귀자고. 보쿠토가 애초에 이런 장난을 할 사람은 아니기도 했고 잔뜩 굳어있는 진지한 얼굴에서 보쿠토의 진심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카아시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테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그것도 동성인 선배에게 갑작스런 고백을 받는다면. 보쿠토의 뜬금없는 고백을 들은 후 부터 아카아시의 심장은 요란하게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왜요?"

"...좋아하니까?"

"지금 그거 고백이죠?"


  단순한 사람인건 알았지만 이렇게 고백도 돌직구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장해서 빨개진 귀를 제외한다면 보쿠토는 별로 여느 때와 다름이 없어보였다. 아카아시는 오히려 제가 더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그래서 보쿠토가 더 얄미워 보였다.


"고백을 그렇게 하는 게 어딨어요?"


  심호흡 할 시간도 안 주고, 아직 준비도 안 됐는데. 보쿠토의 동그란 눈이 더욱 동그래졌다. 아카아시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는지 눈에 띄게 풀이 죽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어린애마냥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보쿠토는 뭔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한달만 사귀자! 그 뒤는 네가 결정하면 되잖아."


  그리고 다시 눈치를 살핀다. 아카아시가 또 화를 내는 건 아닐까하고. 나름대로 머리를 써 겨우 짜낸 묘안이었던 모양이었다. 아카아시의 대답이 늦어지자 보쿠토의 눈썹이 또 추욱 쳐졌다. 아카아시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고 보쿠토는 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끝부분만 빨갛던 보쿠토의 귀가 완전히 새빨개졌고 얼굴도 잔뜩 달아올랐다. 그렇게 좋을까. 홧홧한 얼굴을 커다란 손바각으로 텁 가린 보쿠토의 모습이 그 답잖게 수줍은 소녀 같았다. 


"그럼 사귀는 거야, 오늘부터!"


  보쿠토는 부끄러움을 못이기고 결국 먼저 갈게, 하고 옥상 계단을 우당탕탕 뛰어내려갔다. 옥상에 혼자 남은 아카아시는 이게 과연 잘하는 짓인지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결국 한숨만을 내뱉고 말았다.  








그래 연애나 해 보쿠아카 핫핳ㅅ핫핫 



Posted by 모냐모 :